* 이 글은 아래, '일 의뢰하실 분들께'에 덧붙이는 것으로 읽어주세요. 여러분도 그렇듯 저도 책을 읽다 보면 자연히 저자나 역자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책의 주제를 다루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해왔는지, 어떤 생각으로 책을 썼는지/옮겼는지 등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때때로 책에 어울리지 않는 저자나 역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심지어는 역자가 저자의 사상에 반대하는 사람인 경우도 있더군요. 아, 이 번역자, 과연 얼마나 저자와 긴밀하게 호흡하며 옮겼을까...? 의식적으로 대충 하지는 않았더라도, 아무래도 맥 빠진 번역문이 나오지는 않았을까...? 전 이런 생각을 종종 합니다. 책을 읽고서 감동했는데 마지막에 옮긴이가 쓴 반박의 글을 보면, 독자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저 역시 이제까지 '일'이라는 이유로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책, 그다지 감동하지 않은 책을 맡아서 한 적 있습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렵니다.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 소위 프로에게 그것은 기본일 테지요. 하지만 저는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한다고 자신하지 못합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제가 아끼는 작품, 제가 감동한 작품을 번역할 때와 그렇지 않은 작품을 번역할 때 제 정신 상태가 다릅니다. 그것이 번역에 아무런 차이도 주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저는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앞으로는 제가 '느낄 수 있는 책'만 맡겠습니다. 제 가슴을 움직이는 책, 제 지성을 일깨운 책, 제 영혼을 건드린 책이 아니라면 작업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소위 '짭짤해 보이는' 책이라 해도요. 프로란 자기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하기에 앞서, 자기가 맡을 일을 까다롭게 선택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예 이참에 요즘 제가 맡고 싶은 일을 말씀드리는 것도 좋겠군요. 장르는 별로 가리지 않지만, 최근에는 문학에 좀 더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영어권 작품 중에 당장 떠오르는 것 몇 개를 무작위로 들어보자면, <올리브 키터리지>, <나를 보내지 마>, <우연한 여행자>, <연을 쫓는 아이>, E. B. White의 에세이 모음집(아직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등을 즐겁게/감동적으로 읽었고 그 외에도 이런저런 고전이 있지만 그것들은 넘어가기로 하구요. 그 외에도 다소 논쟁을 유발할 만한 책도 좋아하는데요, <죽음의 밥상>, <음식혁명>, <동물의 역습> 등 식생활/동물권과 관련한 작품도 괜찮고, 미디어 비판이라 할 수 있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죽도록 즐기기> 류도 좋아합니다. 영성이나 정신을 다룬 <아직도 가야 할 길>, <무탄트 메시지>, 톨레의 얼마 전부터 제가 추구하는 번역가상이랄까요, 그것은 <이 사람이 선택한 작품이라면 한번 읽어볼 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번역자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도와주세요.^^* |
a sun and a tiger
a tiger that wants to meet its sun
2011년 10월 3일 월요일
일 맡길 분들께, 새로운 다짐
바른번역에서 나오면서
2011. 9. 13. 이미 아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난 얼마 전 바른번역에서 나왔다. 아직 역자 교정을 해야 하는 원고가 걸려 있기는 하지만, 그밖의 일은 정리한 셈. 2004년 겨울을 시작으로 본다면 거의 칠 년을 함께한 바른번역, 그러고 보니 내가 번역가로 일한 기간의 대부분을 바른번역과 함께했군. 그곳에 있으며 많이 성장했고, 그런 기회를 그곳에서 얻을 수 있었기에, 그 시간이 고맙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함께하자고 권해준 대표에게도 고맙고. 그곳에 있는 동안 함께한 번역가들, 직원들, 또 수업에서 만난 수강생들, 다들 내겐 귀한 인연이다. 이제 난 그곳을 떠났지만, 부디 그곳과 관계된 사람들 모두 잘 지내고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기쁜 얼굴로 인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그곳을 나온 이유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기도 하고, 나도 나름대로 정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몇 자 적어본다. 우선 홍코너(그만둬)부터 소개한다. '그만둬' 선수의 장기는 다음과 같다. 1.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연이 다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 이것은 이유라기보다는 원인이라고 해야겠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 중에는 나도 미처 의식하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중요도와 무관하게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가보자. 우선 그곳에서 내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곳에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을 했지만, 작년 말인가, 그 즈음부터 딱히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기에 이르렀다. 가끔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는 정도를 제외하면 내가 할 일이 많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편했지만, 한편으로는 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할 일이 없는데 굳이 사무실에 나가면 뭘 하나 싶은 날도 늘어났고, 그러다 결국 칠월부터는 재택근무라는 방편을 택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것도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바른번역 대표와 워낙 생각하는 게 달랐다. 이것은 이곳에서 상술하지 않으려 한다. 바른번역 대표와 직접 만나서 대화할 기회도 없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혹시라도 편견이 생기는 건 원치 않는다. 생각이 다르다는 건 말 그대로 서로 다르다는 것일 뿐, 누가 옳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게 아닌가. 옳은 길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고. 바른번역에 관심 있는 이라면,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바른번역 관계자라면 물론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대표와 직접 대화할 수 있으므로 내 생각을 이야기해도 된다.) 3. 무엇보다 난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떠나고 싶을 때 눈치 보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게는 예전에도, 지금도 매우 중요하다. 물론 난 작년에도 유럽에 한 달이나 다녀왔고 시시때때로 일찍 퇴근하고 휴가도 편하게 쓰는 편이었기 때문에 일반 직장인과 비교하면 상당히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눈치를 봐야 했고 마음이 불편했고 어딘지 떳떳하지 못한, 손에 닿지 않는 뱃속 어딘가가 자꾸 가려운 느낌이었다. 차라리 일 년에 삼십 일은 마음대로 쉬어도 좋다, 이런 규정이 있었다면 그날 만큼은 좀 더 맘 편히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와 그런 생각도 든다. 여하간 내가 인도 이야기도 꺼내고 했다는 걸 안다면, 이래저래 내게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듯싶다. 4. 동반자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고 싶었다. 이것은 동반자의 바람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다른 특징이 있겠지만, 이 정도로 하자. 홍코너 '그만둬' 선수를 소개했으니 이제 청코너 '계속해' 선수 차례다. 이번에도 중요도와 무관하게 특징만 적는다. 1. 수강생들이다. 내 수업을 들었고 번역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그대로인데 아직 실력은 안 되고 더 공부해야 하는, 하려고 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난 언제까지나 빚진 마음일 것 같다. 이들이 다 데뷔하기라도 하기 전에는. 2. 번역가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 수업을 듣고 번역가로 데뷔해 활동하는 사람들. 이들은 그래도 데뷔해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은 덜 되지만 어찌 보면 내가 바른번역에 '끌어들인' 사람들이기에, 나 혼자 자유로이 지내자고 발을 빼는 게 어쩐지 비겁한 건 아닌가 싶었다. 더구나 내가 바른번역에서 나오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들에게 '무언의 강요'를 하게 되지는 않을는지도 걱정이었다. (거기 있지 말고 나에게 오세요, 하는.) 3. 현실적인 문제, 즉 돈이었다. 부대표로 있으면서 적지 않은 급여를 받았는데 그것이 '냉무'로 돌아가게 될 테고 더 이상 강의도 하지 않을 테니 강의료도 받지 못한다. 이것을 계산해보면, 어마어마할 정도는 아니어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정도는 된다. 어쩌면 그동안 난 이런 '안정된 수입원'이 있었기에 출판사에서 책을 맡기겠다고 해도 큰소리 치면서 조건을 높게 부를 수 있었던 게 아닐까(아마 맞을 테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조건을 낮출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난 내 조건이 '정당한 대가'라고 믿으니까). 이 외에도 역시 다른 장기들이 있겠지만, 이 정도로 하자. 여하간 이렇게 '그만둬' 선수와 '계속해' 선수가 목숨 걸고 대판 싸운 결과는, 홍코너(그만둬)의 15라운드 판정승이었다. 양 선수 모두 피떡이 되었지만, 승부를 가른 것이 뭔지는 굳이 말하지 않으련다. 바른번역을 나오면서, 대표에게 몇 가지를 약속했다. 그 중 하나는 '번역가들을 데리고 나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아, 물론, 내가 데리고 나오고 싶어도 날 따라서 나올 사람이 한 명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 이걸 말해둘 필요가 있었다. 예전에도 바른번역에서 나간 어떤 번역가가 자기에게 배운 사람들을 몇 명 데리고 간 듯 보이는(?) 일이 있었는데,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내가 바른번역 내부인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어쩐지 수강생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더구나 처음 바른번역을 나오려고 할 때는 나도 나와서 뭔가를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게 뭐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 점을 못박아둘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사실 지금에 와서는 나도 굳이 뭘 해야 하나 싶기는 한데 말이지... 어쨌거나 내가 먼저 말을 건네서 나에게 오라고 하는 일 없을 거라고 약속했고, 누군가 내가 나간 걸 알고 연락해오더라도 내게 오라고 설득하거나 하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온다고 해도 줄 것도 없고, 푸흡. 그런데도 그곳에서 나오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까진 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사람은 아마 나 때문에 나오는 건 아닐 거다. 바른번역에 있으면서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알게 된 게 하나 있다. 나 자신에 관해서. 난 내가 그렇게 보좌하는 자리에 있는 게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대표 자리는 귀찮기도 하고, 굳이 나서고 싶지도 않고, 딱히 권력욕 같은 게 있지도 않으니까. 알고 보니 나는 내 뜻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무척 답답해하는, 한마디로 제멋대로인 놈이었던 것 같다. 난 그런 자리보다는 차라리 최종 결정을 내리는 대표 자리가 낫다. 아니, 그보다도 그냥 내 뜻대로 결정할 수 있는 프리랜서가 맞는다. 용의 꼬리보다는 지렁이 머리인 걸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자리'란 건 뭐가 되었든 성가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앞으로 뭔가를 만든다면, 애초에 내가 없이도 잘 굴러갈 수 있는 모임으로 꾸릴 셈이다. 덧. 바른번역에서 내 강의를 들으려고 벼르던 분들에게는 참으로 죄송스럽다. 그래도 굳이 내게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따로 말씀해주시길. 힘 닿는 대로 도울 생각이니. |
2011년 7월 27일 수요일
번역가 지망생에게 던지는 잔소리: 기초를 튼튼히!
아래는 얼마 전 번역가 지망생 카페에서 설문 조사를 한 후에 카페 게시판에 올린 글. * * * 번역가가 되려고 애쓰고 계신 후배 여러분, 날도 덥고 신나는 일도 마땅히 없는데 어떻게들 지내고 계신가요? 각자 알아서 신나는 일들 만들고 계신가요?^^ 제가 지난번에 공지글 올리면서, 설문조사 결과 놓고 좀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린 것 기억하시나요? 그 얘기 조금 더 해볼게요. 일단 설문 결과부터 같이 한번 살펴보죠. 2011년 7월 21일 오후 5시 20분 현재, 4번 '번역 기술을 모른다'가 276표로 가장 많고, 3번 '우리말 공부가 부족하다'가 272표로 다음, 2번 '독해 실력이 떨어진다'가 250표로 셋째, 1번 '자기 실력을 모른다'가 236표로 가장 적어요. 제가 이제까지 지망생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접하면서 느끼기로는, 1번과 2번이 가장 많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자기 실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그 점을 알기 때문에 1번을 선택하지 않으셨을 수도 있다는 거, 저도 압니다. 부족한 건 안다, 그래서 2, 3, 4번을 모두 선택했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느끼기로 아직 초보라면, 자신의 실력을 누구한테 확인받아본 바도 없을 테고, 다른 사람 번역과 비교해볼 기회도 많지 않았을 테니, 자연히 자기 실력을 잘 몰라야 할 것 같거든요. 일단 이 부분은 넘어가고요. 제가 이제까지 경험해보니까, 독해 실력이 부족한 분들, 그러니까 자기 생각보다 더 부족한 분들 이 상당히 많았어요. 자기는 맞게 번역했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보니까 전혀 엉뚱하게 해놓은 거예요. 그래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러니까 이런 뜻 아니냐, 하고 물으면 그제야 잘못 해석했다는 걸 이해합니다. 자기가 잘못 해석했다는 걸 모른다는 건, 이건 잘 모르겠는데, 하고 생각하며 오역하는 것과는 또 달라요.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자기 번역을 읽으면서 '어딘가 이상한걸' 하고 찾아내지도 못한다는 뜻이니까요. 제가 늘 강조하는데요. 여러분들, 기초를 튼튼히 하셔야 합니다. 정말 정말 기초가 중요합니다. 원서 읽으면서 대강 뜻 파악할 수 있다고 독해 실력이 괜찮다고 믿으시면 안 돼요. 번역가는 띄엄띄엄 읽고 넘어갈 수가 없다는 거, 잘 아시죠? 한 문장도 대강 넘기면 안 되잖아요. 그렇기에 번역가는 문장 하나라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읽어야 해요. 번역 공부할 때는 더더욱 그렇죠. 대강, '아, 이런 뜻인가 보구나' 하고 번역하고 넘어간 뒤 나중에 확인도 안 하고, 그렇게 하시면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건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가는 습관을 기르셔야 해요. 그런 식으로 책 한 권만 번역해보세요.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공이 많이 들어가는지. 대신 그렇게 하실 때 진짜로 번역 연습이 되는 겁니다. 원문의 의미, 뉘앙스, 분위기, 형태 등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걸 재창조할 수 있나요? 국어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면 뭘 하나요. 보이는 게 전체의 반밖에 안 되는데. 그 반을 아무리 완벽하게 재창조한다 해도 전체의 반밖에 못 보여주는 거잖아요? 우리말 공부는 당연히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지만, 더욱 중요한 기초가 언어 실력, 아니 총체적인 독해 실력이란 걸 설마 잊어버리신 건 아닐 테죠? 독해 실력이 딸리는 데는 크게 서너 가지 정도의 원인이 있는데요. 다들 아실 거예요. 첫째로, 책 자체를 많이 읽지 않아서 문자 그대로 '독해력'이 약해요. 저자의 이야기 흐름, 미묘한 뉘앙스, 인물들의 내면, 앞뒤 논리 구조 등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예요. 외국어 책이든 한국어 책이든.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연히, 많이 읽어보고, 많이 분석해보는 것이겠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작품 비평 같은 것들도 보시면 좋아요. 둘째로, 언어 실력이 부족해요. 이것도 여러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요. 첫째, 문법을 제대로 몰라요. 그냥 대강만 알아요. 이래서는 번역에 필요한 수준으로는 독해가 안 돼요. 빠삭해야 해요, 문법은. 둘째, 구문 지식이 부족해요. 무슨 말인고 하면, 기초적인 구문은 분석할 수 있는데, 문장 구조가 좀 복잡해지거나 예외가 되는 게 나오면 보질 못해요. 셋째, 단어/표현을 잘 몰라요. 단어를 너무 모르면, 이를테면 한 문장에 모르는 단어가 두세 개인 문장이 마구 나오면,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끼워맞춰도 이상한 해석이 나올 소지가 있어요. 맥락을 따라갈 수가 없게 되는 거죠. 원인이 몇 가지로 좁혀졌으니,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렇죠, 공부하면 되는 거죠.^^ 부디 '읽기'와 '쓰기' 라는 기본에 좀 더 충실하면서 공부하셨으면 좋겠어요. 어려운 것으로 공부하는 것도 당연히 도움이 되겠지만, 그 방법은 의지가 굳은 사람, 아니면 열의에 넘치는 사람, 그래서 매일 좌절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리 권하고 싶지 않아요. 자기 실력에 맞는 텍스트로 공부하시는 게, 재미도 더 느끼실 수 있고, 효과도 더 빠를 겁니다. 이 점 명심하셔서, 앞으로도 즐겁게 공부하시면 좋겠어요. 저도 이번에 여러분 설문 결과 보면서,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여러분을 좀 더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을지, 다시 고민해보려고 해요.^^ |
2011년 7월 20일 수요일
시간은 흘러가고...
| 아까 낮에 번역 아카데미 이번 기수 졸업생 중 한 사람이 메일을 보냈다. 책을 맡게 되었다며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이번 기수도 테이프를 끊었으니, 앞으로 하나 하나 번역가의 길을 걸어가게 되겠지. 나는 늘 수강생들에게 말한다. 언제 데뷔하느냐보다는 어떻게 데뷔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성급하게 데뷔했다가 실력도 인정받지 못하고 괜히 주눅들어 중간에 그만두느니, 적절한 능력을 쌓은 뒤에 데뷔해서 자박자박 걸어가는 편이 낫다고. 나 역시 데뷔하기 전에 어서 일을 맡고 싶어 했으니 그 마음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조급해 할 필요 없다고 이야기한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어수선하다. 삶은 때때로 내가 굳게 믿는 것들을 뿌리부터 흔들어놓는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 다니던 그 시절에도 그랬다. 중고등학교 대학에 다니는 동안 나름 열심히 믿었던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에 맞부딪혔지만, 실천하는 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닐 거라고, 내가 믿은 게 틀리지 않다고 매달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과 계속 싸웠다. 결국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이 이겨서 다 버렸지만, 난 허탈감에 시달렸다. 그동안 내가 보낸 시간이 모두 헛되었나. 그런 생각에 힘겨웠다. 힘겨운 만큼 마음의 열망은 강했고,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 다시금 내가 찾던 뭔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이번엔 맞는 듯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시험도 해보고 확인도 해봤지만,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이젠 모든 게 잘되겠지, 이젠 걱정할 필요 없겠지, 그렇게 믿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테고, 그 일이 지나가고 나면 더 성숙해질 거야, 생각했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도 있다는 걸 경험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난 짐승처럼 울었지만, 그러고 나서도 가슴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온힘을 다해 내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것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쳤고, 결국 지켜냈다고 안심했을 때, 난 내 손으로 다시 그것을 보내버리고 말았다. 이런 경험에서 내가 배운 건 한때 내가 버린 믿음의 힘, 그리고 시간의 힘이었다. 내가 희망을 찾는 것은 어쩌면 유약한 인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좌로 우로 길에서 이탈하는 것 같은 일들과, 오히려 뒷걸음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에, 내가 아직 못 보는 뭔가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고 가다 보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면서 잃어버렸던 퍼즐 조각을 하나 끼워맞출 수 있게 된다. 직장을 그만둔 일도 비슷한 면이 있다. 나랑 인터뷰하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물어본 질문이 있다. 직장 그만두고 번역가가 된 것이 아쉽거나, 그 일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하게 된 지금, 예전 직장에서 시간을 낭비한 것 같지 않느냐고. 그래, 난 전자공학과 관련한 책을 번역한 적도 없고, 그나마 연관 있는 책이 있다면 <구글드>가 가장 가까울 듯싶다. <구글드>도 전자공학과 직접 관련은 없다. 누구라도 구글에 관심이 있다면, 신기술에 관심이 있다면 번역하기에 무리가 없는 책이니까. 그리고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배운 지식을 번역에 써먹은 일도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낭비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내가 시간을 낭비했다면, 그건 아마도 그때 내가 충실하게 생활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결국 문제는 내 가슴속을 깊이 들여다보고, 거기에 있는 게 무엇이든 피하지 않고 직시하고, 어떤 결과가 기다리든 두려워하지 않고 거기서 본 길을 걸어갈 수 있느냐 그것 아닐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지금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아무리 갈피를 잡기 어려워도, 아픈 것 이상으로 뭔가를 발견하게 된다. 아니면 적어도 아팠던 만큼은 얻는다. 그래서 지금도,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 또 다른 길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기로 한다. 시간은 지혜로운 성인인가. 쉬운 답을 알려주는 대신, 그저 지켜보며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는구나. 때가 되면 알게 되리라 믿으면서. |
2011년 6월 28일 화요일
책추천: 먼지의 여행 | 신혜
|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만난다는 것은 늘 기쁘고 설레는 일이다. 좋은 책을 만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멋진 사람을 알게 되고 그와 대화한다는 뜻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바로 그런 책, 글자와 그림 뒤에 숨어 있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느낌이 드는 것들이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려는 책도 바로 그런 책이다. 제목: 먼지의 여행 글, 그림: 신혜 출판: 샨티 어떤 것은 '한마디로 정리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과정에 의미가 있는데 그 과정을 요약해서 보여주면 '아 그런 거구나' 하고 섣불리 판단하게 된다. 이 책은 지은이가 '자신' 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난 그 과정에서 그가 느끼고 깨친 것들을 읽으며 공감하고, 나의 내면을 다시 들여다본다. 내용 정리는 하지 않는다. 그냥 몇 구절 올려본다. '나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난 이 사실을 잘 믿지 않고 있었다. 계속 남이 하는 말에 매달린 건 내 안에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다.' 지금까지는 남이 만들어놓은 길만 따라왔다. 모르는 길을 가는 게 두려웠기 때문에. 하지만 내가 생각할 수 있다면 생각하는 대로 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뿌리없이 흔들리던 마음에 아주 조금씩 든든한 무언가가 생기기 시작했다. -45, 46쪽 순례자들을 만나는 동안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 그들의 행동과 생각을 배웠다. 그러다 그들이 내 기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갑자기 실망에 빠지고, 모든 게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타인이 베풀어주는 것으로 먹고 잤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를 사랑하며 살지만 종교의 틀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그들은 얼핏 보면 부랑자 같기도 하고 사이비 같기도 했다. 그들 안에는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고 진실과 실제 삶이 하나가 되어서 나오는 빛이 있었지만, 그들도 가끔은 지치고 힘들어 이기적이 되기도 하고, 부정적인 생각과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남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 난 흔들렸다. 그들이 정말 진실을 향해 여행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했다. 의심을 하면 모든 게 싫어지고 화가 나고, 외롭고 잘란 모습으로 세상과 벽을 쌓고 있는 내가 보였다. 내가 흔들리는 건 그들이 내가 기대한 그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들 때문이 아니었다. 나의 의심이 나의 기대와 판단 때문이라는 걸 알고 나면, 다시 그들을 믿을 수 있었다. 그들이 진실을 향해 흔들리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여전히 보물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47-48쪽 전 세계에서 수많은 자원활동가들이 왔다 가는 곳, 그곳에서는 누구나 자기 돈을 들여 봉사했다. 먹을 것과 잘 곳을 각자 해결해야 했다. 일한다고 돈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좋아서 일을 했다. 수녀님은 "내가 이 정도 일을 해줬는데..."라는 생각을 경계했다. "당신이 도와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잘 해나갈 겁니다. 그래도 당신을 받아들이는 건 당신이 배우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일하기. 자유롭게 일하기. 배우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기.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있는 것보다 그들에게 더 많이 받고 있음을 이해하기. 여행 중이던 한 일본 학생이 마더 하우스에 왔다. "왜 이곳에 왔나요?" "가난한 이들을 도우려고요."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은 오히려 당신입니다." 122-123쪽 '슈슈바반'이라는 고아들의 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난 전에는 아기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을 거라고, 그런 생활은 정말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 맑은 눈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보고 나의 고통이 많이 사라지고 난 뒤 다시 아기들을 봤기 때문인지 아기들이 정말 예뻐 보였다. 아기의 눈이 이렇게 맑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기의 눈은 정말 편안했다. 아기의 눈엔 아무런 판단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곳의 아기들은 천국에서 온 것처럼 맑은 눈을 하고 사람들에게 안겼다. 엄마 품이 그리워서, 사람이 그리워서. 그곳 아기들에겐, 마치 수호천사가 하나씩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렇게 밝고 건강할까? 나도 그 아기들에게 안겼다. 아기들은 나를 꼬옥 안아줬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웃어줬다. 내가 그들을 돌보고 사랑해 주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나를 사랑해주는 거였다. 순수하고 맑고 따뜻한 사랑을, 주는 거였다. 나는 매일, 사랑을 받으러 아기들에게 갔다. 128-129쪽 "수녀님, 수녀원의 규율에 따라 사는 게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 적 없으세요?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그러자 그 분은 조용히 말했다. "내가 이 수녀원에 들어와 이곳의 규율을 따르기로 한 건 이 방법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에요. 이곳의 규율을 따르는 게 내 선택이고, 그래서 난 자유로워요." 선택과 자유... 규율을 따르는 것 또한 어떤 태도로 하느냐에 따라 구속이 될 수도 있고 자유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수녀님은 그렇게 보여주셨다. 192쪽 어쩌면 이렇게 나의 고민을 그대로 두지 않고 나를 바꿔가면서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예술인지도 모른다. 내가 바뀌고 나의 삶이 바뀌어서, 나를 둘러싼 세계를 새롭게 창조해 나아가는 것, 이게 진짜 예술이 아닐까? 이렇게 나의 삶이 예술이 되었을 때 내가 일상에서 표현하는 모든 것들도 예술이 될 거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하고 싶은 건 글, 그림, 음악이 아니라 나의 몸과 마음이 분열하지 않는 일, 하나가 되는 일, 그 길을 찾는 일이다. 이게 나의 예술이고, 글, 그림, 음악은 이것을 위한 도구이다. 207쪽 무슨 일을 하는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통해서든,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든 자신이 '무엇이 되어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세계 평화 운동을 하면서 독선적이고 옹졸해지면 그 사람은 '독선적이고 옹졸한 사람'이 되는 거다. 예술 활동을 하면서 외롭고 우울해지면 그 사람은 '외롭고 우울한 사람'이 되는 거다. 딱히 일이라 말할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자유롭고 행복해지면 그 사람은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거다. 그냥, 그런 거다. 247쪽 이 책을 받은 게 작년 봄이었나. 벌써 시간이 꽤 지났다. 받을 때, 출판사에서 아주 흐뭇해하며 건네주던 게 떠오른다. 그동안 책장에 고이 모셔두었는데, 주말에 책 정리하다 동반자가 '나 읽을래' 하고 가져가더니 어제 저녁에 보고 '추천해' 하고 말한 게 계기가 되어 집어들었다. 좋은 책이다.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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