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28.
얼마 전 읽은 대담에서 최재천 교수(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옮긴이이자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저자)는 통섭과 '통합'과 '융합'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대략 이렇게 답했다. 통합은 이질적이고 물리적인 단위를 단순히 묶는 과정이다. 즉 물리적으로 합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대학 학과통합이 있다. 융합은 녹아서 하나가 된다, 말하자면 화학적 합침이다. 통섭은 이렇게 녹아 합쳐진 곳에 뭔가 새로운 것이 생겨날 때 쓰는 개념으로, 생물학적 합침이다. 정리하자면, 통합은 물리적, 융합은 화학적, 통섭은 생물학적 합침이라는 이야기다.
우선 물질이 아닌 유기체를 물리적으로나 화학적으로만 합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이를테면 기계 부품이야 물리적으로 통합하거나 녹여서 하나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두 생명을 물리적으로나 화학적으로만 합칠 수가 있는가? 위에서 예로 든 대학 학과 통합도, 단순히 이름만 통합한 것이 아니라면 두 과가 하나로 합해져서 뭔가 새로운 과나 단체로 바뀌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어떻게 '변화'나 '새로운 탄생'이 없을 수 있겠는가? 여하튼 지금 여기서 이것을 따지려는 것도 아니고 <통섭>이 주제도 아니니 넘어가기로 하고.
<몰입의 재발견>을 번역하면서 '통섭'이 생각났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사서 읽고 있는데, 위에서 말한 대로 '둘이 하나로 합해져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는 개념으로 통섭을 보자면 인간의 자아 역시 비슷한 방향으로 발전해온 듯하다. 이것을 <몰입의 재발견>에서는 '복합성'과 '진화'라는 언어로 풀어낸다. 분화와 통합이 번갈아 일어나면서 복합성이 증가하고, 그러면서 진화해나간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보자.
천재적인 과학자가 있다. 대단히 젊지만 (이십 대 후반)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이 날 정도다. 이 사람은 대단히 능력이 뛰어나고, 그로써 타인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서 '분화 수준'이 현저히 높다. 분화란 이와 같이, 다른 유기체와 구별되는 특징(혹은 유기체 내에서 서로 다른 기능이 발달한 정도)과 연관된다. 다만 아직 그는 과학자로서의 능력만 인정받았을 뿐, '사회적 인간'으로는 점수를 주기 어렵다. 자신의 연구가 세상이나 우주에 어떤 영향을 미칠는지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재미있고 즐거워서 연구에 몰두할 뿐이다. 실제로도 이런 식으로 연구하다가 '나쁜 발명품' 연구에 동참하게 된 과학자를 다들 알 것이다. 그런데 그가 누군가를 만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확 바뀌게 된다. 과학 연구가 전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연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연구 자체보다는 인간과 사회와 지구에 더 관심을 쏟게 되고, 자신의 연구 방향을 그에 따라 재정립한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자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변신하면서, 천재 과학자에 '사회활동가'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제 이 사람은 '통합 수준'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고 보면 된다. 즉, 자기 이외의 다른 유기체와 자신의 관계, 자신과 세상의 관계 등에 눈을 뜨면서 '전체 중 하나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분화'뿐 아니라 '통합' 수준도 높였기에, 그는 상당히 복합적인 인간이 된다. 다시 말해서 그의 내면에 '복합적인 자아'가 생겨났다는 뜻이다.
물론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나선형으로 진행될 수 있다. 확장과 심화, 다시 그렇게 생성된 부분을 전체와 융합하여 새로운 자아로 탄생하는 과정--이것이 바로 칙센트미하이가 말하는 진화하는 자아다. (뭐, 책에서는 실제로 과거부터 인간 자아가 진화해온 과정이 나오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 이렇게 자아가 발전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뭔가. 이득도 없이 그냥 멋 부리겠다고 힘을 쏟을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 이득은 무척 중요한 문제다. 여기서 칙센트미하이가 꺼낸 카드가 바로 '지혜'다. 칙센트미하이는 복합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필요한 것(혹은 생겨나는 것)이 지혜라고 말하면서, 지혜로운 이의 몇 가지 특징을 언급한다. 지난번에도 올린 적이 있으니 간단히 말해보자면, 첫째로 지혜로운 이는 외면을 꿰뚫고 들어가 이면을 들여다본다. 자신을 부추기는 유전자와 사회규범을 곧이 곧대로 따르지 않고, 그 안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본다. 즉 이들은 '보편적 진리'를 추구한다. 둘째로 지혜로운 이들은 사익이 아니라 공익에 따라 행동한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도, 인간뿐 아니라 온 생명도 아우르며 다 같이 살아나가고 성장하도록 행동하는 사람이 곧 지혜로운 이다. 마지막으로 지혜로운 이는 즐겁고 명랑하다. 잘 웃고 꾸밈이 없다. 작은 개울이 비만 내리면 흘러넘치는 반면 대양은 늘 고요하면서 동시에 파괴적인 것처럼, 지혜가 부족한 이는 작은 일에 웃고 울지만 지혜가 차오른 이는 바탕에 명랑함이 깔려 있다.
이뿐만 아니라, 복합성을 추구하다 보면 저절로 '몰입'을 경험하기가 쉽다. 의미 있는 일에 빠져서 자기를 잊는 체험, 그 누가 바라고 원하지 않겠는가. 바꿔 말하면 지혜로운 이는 늘 어느 정도 플로우(몰입) 상태에 빠져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요점은 이것이다. 자신만 행복해지는 길 (분화 수준만 높아져서 행복해지는 길) 따위는 없다. 그러다가는 다 같이 무너지고 만다. 함께 행복해지는 길(통합과 분화, 즉 복합성)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그것이 곧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지혜로워지는) 방법이다.
지혜가 가득한 사자나 호랑이를 상상해보라. 누구보다 위엄과 힘이 있으나 자기를 위해 쓰지 않고 약자를 보호하는 데 쓰는 존재. 커다란 몸뚱이로 아이처럼 뛰어놀고, 포효할 때는 산 전체를 뒤흔드는 존재. 홀로 서 있으면서 모두와 함께 걸어가는 존재. 멋지지 않겠는가. 이것이 우리가 가려는 곳이라면.
trackback from: 번개같지만 눈멀고 꽉막힌 초지능 튜링머신과 창조적이고 진화적이지만 두레뭉실한 지각기계가 만날때.
답글삭제번개같지만 눈멀고 꽉막힌 초지능 튜링머신과 창조적이고 진화적이지만 두레뭉실한 지각기계가 만날때. 제목이 뭔가 이상하지만 넘어갑시다. 이글은 세권의 책 "특이점이 온다" "뇌는 하늘보다 넓다" "세컨드 네이처"를 읽고 나름대로 정리한 생각입니다. 전에 특이점이 오는걸까? 라는 포스팅을 했었죠. 연결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글쓴다고 했는데 거의 한달이 걸려서 글을쓰게 되는군요. 사실 이 세권의책들에 대한 각각의 서평이나 요약은 훌륭..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답글삭제구체적인 주제는 조금 다른내용 입니다만, 관련성 있는 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트랙백 하나 걸겠습니다.
@삽군난무붑샤 - 2010/01/04 16:10
답글삭제안녕하세요~ 첫 댓글이네요.
으음... 전에 이글에 트랙백을 건적이 잇었군요.
답글삭제오늘 구글 버즈에서 자아에 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영상을 발견했습니다. 트랙백을 하나 더 겁니다. 관심 가시면 한번 보시는것도 괜찮으실것 같네요.
trackback from: 선의 원천과 과학은 어떻게 서로 마주보는가.
답글삭제사실 저는 선악이라는 이분법적인 프레임으로 우주를 바라보는걸 싫어합니다. 두개가 서로 대립하는 세상의 구조는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너무 단순해요. 무엇보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빠져있다고 생각되거든요. 덕택에 환경의 변화가 느린 세상에서는 그럭저럭 쓸만한 모델로 통할 테지만요. 그러나 선이라는것의 원천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원천은 사람이 지닌 감정이입 능력일 거라 생각합니다. 즉 자신을 벗어나 다른 존재가 한번 되어 보는 능력말이죠. 흔히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