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까 낮에 번역 아카데미 이번 기수 졸업생 중 한 사람이 메일을 보냈다. 책을 맡게 되었다며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이번 기수도 테이프를 끊었으니, 앞으로 하나 하나 번역가의 길을 걸어가게 되겠지. 나는 늘 수강생들에게 말한다. 언제 데뷔하느냐보다는 어떻게 데뷔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성급하게 데뷔했다가 실력도 인정받지 못하고 괜히 주눅들어 중간에 그만두느니, 적절한 능력을 쌓은 뒤에 데뷔해서 자박자박 걸어가는 편이 낫다고. 나 역시 데뷔하기 전에 어서 일을 맡고 싶어 했으니 그 마음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조급해 할 필요 없다고 이야기한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어수선하다. 삶은 때때로 내가 굳게 믿는 것들을 뿌리부터 흔들어놓는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 다니던 그 시절에도 그랬다. 중고등학교 대학에 다니는 동안 나름 열심히 믿었던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에 맞부딪혔지만, 실천하는 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닐 거라고, 내가 믿은 게 틀리지 않다고 매달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과 계속 싸웠다. 결국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이 이겨서 다 버렸지만, 난 허탈감에 시달렸다. 그동안 내가 보낸 시간이 모두 헛되었나. 그런 생각에 힘겨웠다. 힘겨운 만큼 마음의 열망은 강했고,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 다시금 내가 찾던 뭔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이번엔 맞는 듯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시험도 해보고 확인도 해봤지만,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이젠 모든 게 잘되겠지, 이젠 걱정할 필요 없겠지, 그렇게 믿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테고, 그 일이 지나가고 나면 더 성숙해질 거야, 생각했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도 있다는 걸 경험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난 짐승처럼 울었지만, 그러고 나서도 가슴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온힘을 다해 내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것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쳤고, 결국 지켜냈다고 안심했을 때, 난 내 손으로 다시 그것을 보내버리고 말았다. 이런 경험에서 내가 배운 건 한때 내가 버린 믿음의 힘, 그리고 시간의 힘이었다. 내가 희망을 찾는 것은 어쩌면 유약한 인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좌로 우로 길에서 이탈하는 것 같은 일들과, 오히려 뒷걸음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에, 내가 아직 못 보는 뭔가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고 가다 보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면서 잃어버렸던 퍼즐 조각을 하나 끼워맞출 수 있게 된다. 직장을 그만둔 일도 비슷한 면이 있다. 나랑 인터뷰하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물어본 질문이 있다. 직장 그만두고 번역가가 된 것이 아쉽거나, 그 일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하게 된 지금, 예전 직장에서 시간을 낭비한 것 같지 않느냐고. 그래, 난 전자공학과 관련한 책을 번역한 적도 없고, 그나마 연관 있는 책이 있다면 <구글드>가 가장 가까울 듯싶다. <구글드>도 전자공학과 직접 관련은 없다. 누구라도 구글에 관심이 있다면, 신기술에 관심이 있다면 번역하기에 무리가 없는 책이니까. 그리고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배운 지식을 번역에 써먹은 일도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낭비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내가 시간을 낭비했다면, 그건 아마도 그때 내가 충실하게 생활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결국 문제는 내 가슴속을 깊이 들여다보고, 거기에 있는 게 무엇이든 피하지 않고 직시하고, 어떤 결과가 기다리든 두려워하지 않고 거기서 본 길을 걸어갈 수 있느냐 그것 아닐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지금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아무리 갈피를 잡기 어려워도, 아픈 것 이상으로 뭔가를 발견하게 된다. 아니면 적어도 아팠던 만큼은 얻는다. 그래서 지금도,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 또 다른 길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기로 한다. 시간은 지혜로운 성인인가. 쉬운 답을 알려주는 대신, 그저 지켜보며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는구나. 때가 되면 알게 되리라 믿으면서. |
2011년 7월 20일 수요일
시간은 흘러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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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충고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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